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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뇌에 대한 책들


얼마 전 병원침대에서 누워 읽은 책은 [착각하는 뇌]라는 책입니다. 이케가야 유지라는 젊은 의학도가 쓴 책인데, 짤막한 칼럼처럼 재미있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0세기말과 21세기의 전환시대 들어서, 뇌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그야말로 인류의 관심은 이성과 지식의 시대를 지나, 그 매커니즘이 작동되는 자기 자신의 시스템에까지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베르베르의 책 [뇌]도 인기라던데, 그건 아직 못봤습니다.


처음 제가 [뇌]에 대한 책을 고른 것은 우연히 손에 잡힌 하루야마 시게오의 [뇌내혁명]이었습니다.

꽤 오래된 책인데도 여전히 잘 팔린다고 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난 느낌은 한마디로 오랫동안 궁금해했던 정신과 육체의 완전한 통로를 발견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흔히 정신과 육체는 각각의 관점에 따라 상대적인 가치를 부여받아왔죠. 대학에서 처음 유물론을 배웠을 때의 충격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어쨌든 [뇌내혁명]은 우리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고급 자연산 몰핀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스트레스를 받으면 핏속에 흐르는 독성 물질에 대한 이야기까지, 결국 뇌의 화학반응에 의해 달라질 수 밖에 없는 육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기보다는, 건강한 정신에 건강한 육체가 깃든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다음에 읽었던 책중에는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을 쓴 하버드대학의 심리학과 교수 대니얼 길버트는 이미 행복이라는 것이 인간뇌의 진화과정에서 자기보호를 위한 매커니즘으로 작동한다는 비밀을 밝힌 바 있습니다. 유사한 내용의 칙센트 미하이 칙센트의 flow라는 책에서도 인간은 스스로의 행복을 위하여 뇌가 스스로를 기만한다는 것을 설명하기도 했죠. flow는 어느 경제연구소의 전무님이 개인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아주 침을 튀기면서 칭찬하시더군요. 정말 읽어볼만한 책입니다.

이런 책의 곁가지로는 테리 번햄의 [비열한 시장과 도마뱀의 뇌]라는 책이 있습니다. 최근의 행동경제학의 성과를 대중적인 시각에서 설명하는 이 책은 주식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 읽어볼 만 합니다. 뜻밖에도 인간이라는 것들이 정말 비이성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고 나면, 경제현상의 아이러니나 불합리한 것들이 그럴 듯하게 이해됩니다. ^^ 또 다른 책으로는 라프 코스터의 [재미이론]이 있습니다. 그 자신이 이미 게임스토리작가이기도 한 저자가 도대체 왜 어떤 게임은 재미있는지, 어떤 것은 재미없는지를 나름대로 분석해놓은 책입니다. 정확하게는 뇌하고는 관계가 없지만, 전체적으로는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입니다. 이 책은 번역 문투때문에 좀 짜증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화론에 대한 편견과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정말 읽어볼 만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완벽하게 이해하기에는 좀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띄엄띄엄 읽어서인지 몰입이 잘 안됩니다. 욕심으로는 시리즈물인 [눈먼 시계공]이나 [만들어진 신] 등도 읽어보려고 샀습니다만, 계속 대기상태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앞서 이야기한 [착각하는 뇌]입니다. 이 책은 이런 맥락에서 인간이 인식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것들이 사실은 모두 뇌의 생물학적 진화에 따른 작동 매커니즘 위에서 일어나는 착각이자, 불완전하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우리를 속이고 있다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이 가능하고, 미래를 준비하며, 사람과 사람들이 협력해서 살아가는 것은 그런 불완전성과 뇌의 사기행각때문이 아닌가 하는 역설적인 추론이 그럴 듯하게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책을 읽으면 아이러니하게도 결론은 늘 과학적 뇌의 분석에서 시작해 윤리적 자기 반성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즉, 뇌라는 것이 얼마나 기만적이고 허술한 것인가 알면 알수록, 스스로를 겸손하게 돌아보고, 자기 자신의 불완전성을 이해하게 되니까요. 자기 안경자체가 왜곡되어 있는데 자기가 보는 것에 대해서 맹신한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것도 없겠지요. 심지어 합리적이라고 하는 인간이성의 작용자체도 사실은 엄청나게 저급한 본능과 이기심, 무의식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누구나 자신의 견고한 이성적 신념체계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그동안 이성은 많은 것을 공부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연구하면,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해 온 거죠. 그런데 그 이성을 공부하는 두뇌자체가 이미 불완전하며, 스스로 기만하는 매커니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어쩌면 우리는 진리에 다가가기 위해서 공부가 아닌, 수양을 해야 한다는... 선조들께서 이미 체득하신 경험을 뒤늦게나마 새삼 깨닫게 됩니다. 현각스님이 하버드에서 이미 밥을 먹고 있으니 메뉴판이 필요없었다라고 주장한 내용과 비슷한 것이겠죠.


결국 공부하듯 수양하고, 수양하듯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상을 넘어 본질을 이해하려면, 그리고 참된 자신을 발견하고 받아들여 진정한 평화를 얻고, 가치를 얻으려면 말이죠. 위대한 학자들은 그래서 학자이자, 도인처럼 바뀌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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