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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인터넷을 위하여

소통과 관계의 역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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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사업을 하는 후배와 오랫만에 만났다. 안부를 주고 받다가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다. 후배의 회사 직원들이 대부분 일본인들인데, 이들과 지내면서 생긴 일이라고 한다. 사장인 후배는 직원들과 소통을 위해 매일 1명씩 불러 돌아가면서 전체 직원들과 식사를 했다고 한다. 직원이 30여명이니까 한달동안 계속 이렇게 사장과 직원. 둘이 식사를 했겠지. 그런데 하루는 일본인 직원 하나가 자신을 찾아왔단다.

"제발 무슨 이야기인지 말씀해 주세요" 일본인 직원의 쌩뚱맞은 하소연에 깜짝 놀란 후배는 무슨 뜻인가를 물어보았는데. 사연인즉슨 이랬었다. 일본인들은 점심시간에 사장이 자신을 불러 같이 식사를 하자고 하면 굉장히 중요한 개인적 메시지를 전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그런데 사장이 같이 식사를 하면서도, 이런 저런 사적 이야기만 할 뿐, 그 메시지를 말하지 않으니,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한다.사장이 여러 여건상 끝내 할 말을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묻지를 못했던 것이다. 이같은 상황은 모든 직원들에게 일어났다.

결국 일본인 직원들은 사장이 돌아가면서 자신들을 점심시간에 불러 뭔가 하고 싶은 말을 못하는 것이 정말 무엇인지,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는 것이다. 한국식으로 직원들과 개인적인 소통을 하려고 식사를 했던 이 후배는 일본인들의 정서와 우리가 이렇게 다른 것에 크게 당황했다고 한다. 그 자신은 이미 일본에 십년 넘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처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한국에 와서 점심시간이면 단체로 식당을 찾아니며 식사를 하는 한국인들을 잘 이해 못한다고 한다. 12시가 되면 일사분란하게 부서단위로 거의 동시에 식사를 하러 가는 한국인들. 혹시라도 자기를 빼놓고 식사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이 한국인이다.

회식을 하면, 사장은 자리를 바꿔가며 각각의 직원들 틈바구니에서 한잔씩 술을 돌려야 한다는 것쯤은 상식이 되어 있다. 낮에 같이 점심을 먹고 저녁엔 또 같이 술한잔 해야 한다. 그것도 모자라서, 일요일엔 다들 모여서 등산을 간다. 한국인의 소통은 이렇듯이 생각의 소통보다는 감정의 소통이 더 우선시 된다. 함께 있다는 것, 소속감. 우리끼리 라는 의식. 그것이 우리들의 일상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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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혁명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시대의 주류가 되면서 소통이 중요하다고 한다. 인터넷 소통정치, 인터넷 광폭행보 등의 언어가 미디어에 실리고 있다. 대통령이 독수리타법으로 트위터를 하면서 화제가 되었고, 대기업 오너와 중소기업 사장이 트위터로 논쟁을 하는 것이 이슈가 됐다. 그런데 우리는 같이 점심먹고 도망자 없이 2차를 함께 하는 집단 문화를 디지털 공간에서도 어쩌면 반복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왕따 당하기 싫으면 팔로우 하라고, 추천이나 댓글 안달아주면 서운하다고 소리지르고 있는 지도 모른다.

늘 집단의 관계속에서 위아래의 눈치를 보고, 옆사람의 재테크와 평판과 패션을 살피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디지털은 기하급수적인 관계를 만들어 주고 있다. 수백명의 친구와 수천명의 팔로워, 수만명의 카페 회원들을 사귀고 알아야 하고, 안부를 주고 받아야 한다. 결국 지칠 것이다. 관계에도 역치가 있다. 우리의 관계는 너무 번잡하고 형식적인 면이 있다. 마구 벌여놓은 디지털 관계들도 조만간 시들해질 것이 분명하다. 트위터를 언제까지 계속 읽겠는가?

물론 우리의 집단 문화 자체가 나쁘다거나 좋다거나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우리 한국인의 정서적 특성이고, 말 그대로 우리 문화니까. 그러나, 정작 점심을 같이 먹고, 같이 목욕을 하고, 같이 트위터 맞팔을 해도 소통이 안된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당연히 생각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생각이다. 욕설이나 비아냥으로는 생각을 소통할 수 없고, 맞팔과 친구맺기만으로도 생각을 나눌 수 없다. 관계는 소통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결국 생각을 가진 소통만이 진실한 관계를 맺을 것이다. 그런 관계, 그런 소통을 보고 싶다.